내가 이 소식을 야간에 일 하다가 접하고 첫 나온 한마디는 이거였다.
"미x거 아니야..?"
그리고는 내내 어이가 없어서 계속 웃었던것같다. 그러다 새벽 무렵에 끝날때가 되어서 결국 이것은 그냥 하나의 해프닝처럼 끝나버린것을 보고 참 한편으론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참 여전히 허탈한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 웃음은 소위 블랙 코미디를 봤을때 느껴지는 웃음과도 같았다고나 할까..
그것은 내가 일하고 있는 공간에서도 느낄 수 있었는데, 소식을 들은 직,간접적으로 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알았다는것이다.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의 무반응...
그럴정도로 현재의 그런 돌발 사태는 누군가가 기대했던 어떠한 효과도 우리같은 평범한 이들에게는 아무 느낌도 주지 않았다는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막을 잠깐 훑어 보았는데,(사실 예전에 어떤 분을 당선시키기 위해 국가 기관들이 나서서 댓글을 달며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을 보고난 이후부터는 개인적으로는 이쪽세계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기때문에.. 정이 덜 간다고 해야할까..)실은 그때만큼 잘 들여다 보지 않게 되고는 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2016년 어떤 분의 탄핵과 관련하여 하나의 흐름이 있었고 이것들은 또 새로운 형태의 "민주시민"층을 만들어 냈기때문에 나름 방어적 메커니즘(즉, 조절적 기능이) 작동이 될거란 믿음도 있기도 하고..
(* 사실 이 흐름과 시그널은 어떤면에서 이미 노무현 정부당시의 탄핵정국과, 또 2008년 소고기 정국때 이미 보였던 시그널이기도 하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그 흐름이 누적되었다가 어떤 면에서 결과로 드러난게 2016년의 탄핵 정국이었을것이다. )
그래서 이쪽세계는 관심을 거의 놓다 시피 하며 사는데..
어쨌건 기자회견을 보면서 나는 더욱 어이가 없어 오히려 화가 나기까지 했다. 준비도 없이 마치 무슨 자판기에서 권력을 끌어쓰듯, 혹은 "계엄령"이란 용어 자체를 무슨 쇼핑몰에서 물건 골라담듯 쓰는것을 보면서 '아 이런게 권력 남용이구나..' 이것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 뱉는 태도에서 분노를 넘어 어이가 없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같은 그냥 잡놈이 그들의 숭고한 (그래봤자 아주 소수무리 인듯한데..)깊은 뜻을 어찌 알겠는가마는 최소한 분명한건 이들이 아무 준비도 없이 권력을 남용하고 마구잡이로 칼자루를 휘둘러 대는데 그것도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그 칼 역시도 무디고 뭉그러지고 눅슨 칼이란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칼자루를 쥐어준것과 같은 현상이 바로 그런 분노를 넘어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여전히 존재하는 호르헤와 자벨경감..
장미의 이름에서 호르헤는 분명 어느순간 자신의 판단과 생각이 맞았던 때가 있었을것이다. 또한 자벨 역시도 마찬 가지 였을 것이다 하나의 시대는 그 시대와 함께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해석이 들어맞고 백이면 백 들어맞던, 그 유용한 생각의 "툴"이 잘 적용되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그러한 툴.. 이제껏"유용하다고 생각했던 진리의 툴"이 어긋날 때가 온다... 엇박자가 나오는것이다.
그런 엇박자를 무시하면 자신의 세계관에 자신을 머물게 하고 바깥의 흐름과 무관한 엇박자 댄스를 추게 만든다. 일반인들이 이러한 세계 속에서 사는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을 가지고 소위 사람들의 "수호자"라는 역할을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겐 바로 이런 엇박자의 신호를 바로바로 감지하며 맞춰 나갈줄 알아야 한다.. 우리같은 잡x과는 달라야 한다. 그래서 이런분들은 개인적 중용을 수시로 체크하며 시대적 중용에 맞춰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것인데.. 이게 시간이 오래되면 이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장미의 이름에서 호르헤와 자벨의 경우가 그러한 경우다 이들이 탔던 시대의 궤적속에서 어느순간 그들의 시각과 판단력은 잘 들어맞았을것이고 적중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순간 엇박자가 나는 시그널을 감지하지 못하다가 갇혀버리고 그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눈이 멀어버린것이 바로 "호르헤"이며, 뒤늦게라도 그것을 알아차려 버리며 그 시간대를 인정해 주며 뒤로 빠져준게 레미제라블의 "자벨"경감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도 자신이 생각했던 관념에 사로잡혀 사건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는 깨닫는다. "유용한 진리는 버려야할 연장과도 같다.."
소설속에선 여기까지만 언급된것같은데 이 의미는 그런 의미일것이다. 지향점 자체를 버리고, 새로운것을 쫓아가라는 식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지향점은 영원한데 이 지향점을 담는 그릇은 그때 그때 바뀌는데 여기서 버려야 할 연장이란 바로 그런 "그릇"을 의미하는 것일테다..
문제가 되는건 지향점 체가 아닐것이다.. 어떠한 지향점이던 그 지향점이 멈춰있거나 변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왔다갔다 하며 가는것인데, 그런데 이런 왔다 갔다 하는 흐름에 그 전 써먹었거나 혹은 이제는 폐기처분 되어야 할 "연장"(즉 포장지 혹은 그릇.. 뭐가 됐던..)에 도로 싸 가지고 등장을 하면 그것이 과연 그 시대가 반갑게 맞이 할 것인가..?
닉슨과 알렉산더 헤이그..
어떤 면에서 닉슨은 행운아 이기도 하다. (이런생각을 하게 될줄이야. .웃음이 나온다. ..) 최소한 그는 훌륭한 참모와, 내조를 잘했던 "영부인"이 있었잖은가..?
올리버 스톤의 "닉슨(Nixon)"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 마지막 부에 나온다. 그가 워터게이트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누군가 그에게 두 가지 제안을 한다.
첫번째는 "자진 사임"을 이야기하고 두번째는 (여기서 좀 머뭇거리는데.. 닉슨은 대충 눈치를 챈다.. ) "군을 동원하는 방법입니다..." 별로 내키지 않지만 어쨌건 자신의 직분에 맞는 조언을 하는것이다.
그 조언을 하고 닉슨의 사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 알렉산더 헤이그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어제의 그런 "해프닝"은.. 결국 그 두 가지 선택지중 어느 한 가지는 통하지 않는것은 분명한것같다. 오히려 그것은 국민을 기만하였고 무시하였으며 저급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숭고함"이 만일 궤와 어긋나 있다면 그 숭고함은 자신만의 숭고함 일 수 있다.다른 이들에겐 전혀 다르게 느껴 질 수 있을것이다. 이걸 모르고 갇히면 그게 바로 "호르헤"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어느 한 경우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닐테다.. "수호자"라고 자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 일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조정"과 "하락"이 있다면 "조정"은 더 크게 오르기 위한 후퇴이나 "하락"은 그냥 하락인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하나의 지향점을 버리지 않는것이다. 이렇게 각각의 양쪽끝의 각자의 방식의 원대한 지향점을 먼곳에 두고 새롭게 매번 사람들이 원하는 포장지를 바꿔가며 흘러갈때 가장 잘 흘러갈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걸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지금 그 분께 필요한것은 "알렉산더 헤이그"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밋밋하니 음악을 하나 올리면서 마무리 해야겠다.
My Way..
(당연히 섹스 피스톨즈의 버전으로 올려본다. )
https://youtu.be/BWKDInTo3CE?si=Fyqt9mSXq56dTwy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