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리뷰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rosehill 2017. 12. 26. 00:38

같은 시기에 태어나 외모나 체형마저 비슷한데 전혀 상반된 두 길을 갔던 사람이 여기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한 사람은 웃음과 희망을 전해준 캐릭터로, 또 다른 하나는 전쟁과 증오를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로 오래 도록 기억되고 있다.


그 둘은 각자의 분야에서 각자의 길을 갔고 서로 만난적도 대면한 적도 없지만, 또 다른 공간속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디어라는 공간이었고, 그 미디어라는 하나의 전장에서 둘은 축소된 모습으로 캐릭터로서 맞붙게 된다. 그것은 세계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광풍속에 휩싸였을때 마치 그것의 축소판처럼 캐릭터를 놓고 벌어진 또 다른 한 판의 전쟁이었다..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오노 히로유키 作)



몇일전 댄 브라운의 신작을 예약 주문하고 나서 뭔가 읽을꺼리를 찾던중 눈에띄는 책표지가 들어왔다. 비슷한 외모에 콧수염을 교집합으로 공유하며 반반씩 그려진 얼굴.. 그러나 우리에겐 전혀 다른 이미지로 기억되는 두 사람..


바로 채플린과 히틀러다...


 채플린과 히틀러(Chaplin & Hitler)

(출처 : Google)



1889년 4월 16일 런던 빈민가에서 한 사내 아이가 태어난다.

그로부터 4일후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암인에서 또 한명의 사내 아이가 태어나게된다.

불과 4일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이 두 사람은 이후 , 상반된 길을 가며 숙명적인 캐릭터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미디어라는 또 다른 전장터에서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드라마틱한 두 사람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씌여진듯하다. 작가 오노 히로유키는 일본 채플린 협회의 회장이며 영화 프로듀서로 소개 되어있다. 아마도 채플린 협회 회장이니만큼 ,두 사람의 이런 드라마틱한 일대기가 그의 관심을 끌었으리라 생각된다.


크게 두 사람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긴 하지만, 비교적 채플린의 일대기 위주로 이어지는데 특히, 주로 2차 세계대전을 전 후 해서 영화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를 만들기 위한 기획과 과정들이 간간히 당시의 히틀러의 행보와 맞물려 소개되어지고 있다. 작가가 후반에 서술하듯, 자신이 채플린의 전문가이며 채플린의 일대기 특히 위대한 독재자를 만들때의 과정을 조사하다 보니, 영화속에서 조롱하고 있는 타겟, 즉 히틀러를 조명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편으론 이것은 어떤면에서 미디어라는 전장터에서 맞붙은 전쟁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찌됐건, 이 책은 채플린에 관심이있거나 혹은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본 사람들, 또는 히틀러와 채플린이라는 두 상반된 캐릭터가 비슷한 시기의 상반된 행보들에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 여겨진다.


주로 위대한 독재자를 만드는 과정과 험난했던 여정들이 그려지지만, 다른 에피소드들 채플린과 히틀러의 콧수염과 관련한 이야기들이나, 다른 영화들을 구상하려 했던거나, 삭제 혹은 편집본에 대한 이야기들도 소개가 되고있다.




내가 이책을 읽으면서 받았던 느낌은 채플린은 히틀러라는 하나의 만들어진 캐릭터를 뭉게 버리기 위해 자신의 고유캐릭터를 내 던지면서까지 일종의 자폭 비슷한 도발을 한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자폭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 같지만,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보고, 또  이 책을 읽어 보면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채플린이..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당시 히틀러는, 자신의 미디어를 총 동원하여 (그러니까 주로 라디오와 영화가 되겠다.) 1차대전 패전이후 경제난에 시달리던 당시의 독일 국민들을 하나로 휘어잡고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자신이 독일을 구할 수 있는 구세주, 메시아와 같은 존재처럼 자신을 우상화 시켰다.  특히 영화는 그의 가장 강력한 선전도구이자 자신을 우상화 하는데 있어 최고의 강력한 무기였다.  그리고 그런 독일 국민들을 특정 세력에 대한 증오감과 자기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면서 세계대전이라는 전쟁터로 국민들을 서서히 몰아가고 있었다.


연단에 혼자 서 있는 지도자,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며 찍은 샷...등을 통해

히틀러를 구세주나 메시아 같은 존재로 이미지화 시킨다.

(리펜슈탈의 선전영화 의지의 승리 중에서..)




그런데, 여기서 당시의 채플린을 잠시 들여다보면, 그는 어떤면에 있어서 바로 그 미디어.. 즉,영화..

그 영화의 태동기부터 영화를 접하고 그 무렵 부터 수 많은 영화들을 만들고 출연하던 어떤면에서 바로 그 미디어를 통한 관객을 휘어잡는 능력이 탁월한 전문가였다... 채플린은 알다시피 이미 영화가 태동하기 이전에 어린 시절부터 쇼 극장 무대에서 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20세기 초반 당시의 활동사진(영화 초창기의 단순한 몇분짜리 필름들..)에 매료되었고, 바로 그 무렵부터 맥 세닛이 이끌던 키스톤 스튜디오(Keystone Studio)에서  영화를 배우고 출연하고 있었기때문이다. 말하자면 태동기부터 미디어를 만지작 거리던 전문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미디어를 통해 관객을 휘어잡는 그 탁월한 기술을 히틀러와는 정 반대로, 자신이 바보가 되는 캐릭터, 즉 우리에게 잘 알려진 떠돌이,방랑자 캐릭터(Tramp)를 통해, 관객과 대중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선사하는 "기법"을 선보이고 있었던것이다... 즉 자신이 바보가 되면서 관객들에게 위안과 웃음 희망을 전해주는 용도로 그런 기법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니스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 (Kid Auto Races at Venice, 1914년)

이 영화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떠돌이 캐릭터가 처음 등장하게 된다.



이런 사람이 만일 당시의 히틀러의 행보..  선전부장 괴벨스와 함께 또 독일의 여성감독 레니 리펜슈탈의 올림피아나 의지의승리.. 웅장하고 현란한 선전영화들을 통해 미디어를 통한 자신의 우상화 또 거기에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대중을 증오와 전쟁터로 몰아가는 그런 나치 독일의 행보들을 봤을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이 망할 개자식 같으니 , 난 네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고있어".. (중략)

"...이 친구는 내가 본 중에서 가장 뛰어난 배우인걸..."

(229페이지 본문중에서.....)


 - 1940년 6월 프랑스의 항복 소식을 들은 히틀러가 기뻐서 춤을 추었다는 뉴스를 반복해서 본 채플린이 보인 반응

( * 주석에 따르면 이 내용은 듀란트의 회상 : 채플린 거장의 생애와 예술 781쪽에 나와있다고 한다)


많은 것을 똑같이 따라하려고 했던 흔적이 엿보인다.(우측사진 253p)

만들어지는 히틀러의 캐릭터를 어떻게든 뭉게 버리고 싶었던게 아닐까.



미디어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채플린이 어떤면에서 자신이 하는것과는 정반대로의 행보를 보이는 히틀러가 얼마나 얄밉게 보였을지는 저 위의 글을 보면 유추할 수 있을것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 위대한 독재자의 만들어진 과정에서 눈에 띄는것은 최초의 원본과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우리가 영화로 본) 부분이 많이 다르다는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마지막 영상의 연설씬이다.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장면 연설씬

연설을 마친 채플린은 마치 뭔가를 더 이야기하고 싶은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카메라를 바라보고, 이내 영화는 끝나버린다.

그 동안의 채플린의 캐릭터 (떠돌이,방랑자, 어리숙하고 바보스런 캐릭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장면이기도하다.

어떤 면에있어서 캐릭터를 던지면서까지 이런 무리수를 두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을 통해 원래의 초본을 읽어보면, 원래는 마지막 연설씬이 코믹하고 약간은 동화적이게 구성되어 있었던것을 볼 수있다. 연설중에 병사들이 춤을 추며 함께 어우러지고 연설도 그렇게 무겁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호소하는 듯한 것이 아니고, 그리고 마지막엔 이 모두가 꿈이고 여전히 수용소에 갇혀있는 그러나 그 안에서 독일병사와 미소를 주고받는 그런 동화같은 식의 엔딩으로 끝나게 되어있었다..그러니까 말하자면 원래의 우리가 알고 있는 떠돌이 캐릭터의 범주 안에서 , 그 캐릭터가 가진 이미지를 "살려" 놓은 상태에서 간접적으로 교훈적인 연설을 하며 마무리를 하는 구성이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식의 긴 연설과 교훈적이지만 뭔가 이전의 바보스런 캐릭터와는 거리가 먼 듯한식의 진지한 연설의 형태가 아니었던것이다.  초기에 초본을 작성했을때와 영화 만들어질 무렵의 당시의 국제 정세와 2차 세계대전을 승승장구 하던 히틀러의 행보들을 보면서 이후에 채플린이 수정을 하였다는것인데, 이것이 어쩌면 개인적인 히틀러에 대한 감정을 분출 시킨 것이 아닌가, 이 양반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캐릭터를 던져가면서까지, 상대의 캐릭터를 뭉게버리고 싶었던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것이다...



이게 맞던 맞지 않던.. 어찌됐던 결과론적으로 볼때, 이후에 히틀러의 이미지는 채플린의 이미지에 가려지며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연설 횟수가 훨씬 줄어들었다고 하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외소한" 히틀러의 이미지 역시도 사실은 채플린에 의해 덧 씌워진것이라고 한다. (실제 히틀러는 170넘는 키에 다소 통통한 몸집이었다고 함) 그러니까 채플린이 만들었던 떠돌이 바보 캐릭터는 히틀러의 왕국에서 미디어로 열심히 만들어낸 히틀러의 캐릭터에 달라붙어 자폭을 한 셈이 된다.. 


채플린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껏 어수룩하고 바보같은 떠돌이가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순간 더 이상의 떠돌이 캐릭터를 유지할수 없을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아마도 연설씬을 그렇게 수정하는 순간부터 이제 떠돌이 캐릭터는 이전과 같아 질 수 없슴을 채플린 역시 각오했을 것이다. 관객역시도  마찬가지 였을것이다.


그래서 이후에 다음작품 "살인광 시대"엔 떠돌이가 나오지 않고, 그 다음 작품인 라임라이트(Limelight)를 통해 떠돌이의 쓸쓸한 퇴장을  보여준다.


한때 유명했던 코메디언 칼베로는 빈 객석을 허탈하게 바라본다

라임 라이트 중에서(Limelight,1952)



미디어 전장터에서 붙은 캐릭터 대결.. 누가 승자일까..?


영화가 개봉된 이후 미국에서 찬,반 팽팽한 논란을 일으켰지만, 대체적으로 큰 흥행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 채플린은 힘든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후버 국장 시절의  FBI는 끊임없이 그를 옥죄었고, 결국 라임라이트 개봉당시에 영국을 방문한 채플린의 재입국을 거부하며 추방시켜 버리고 말았다.


히틀러는 연설횟수가 줄어들고 패전이 짙어지면서 45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채플린은 추방이후에 스위스에 거주하면서도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지만 떠돌이 캐릭터가 사라진 그의 영화는 이전 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한다.


두 캐릭터의 충돌은 어찌보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기억한다. 누가 승자이고 누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가를..




이후 알려졌다시피 1972년 채플린은 자신을 쫓아낸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에 명예롭게 초청되어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속에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게 된다. 영국여왕은 75년 채플린에게 기사 작위를 내린다.


떠돌이 캐릭터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여전히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오노 히로유키 저/양지연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