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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영화..

rosehill 2009. 6. 9. 13:57



채플린은 자신의 영화속에 자신의 삶과, 또 희망, 이상을 이야기 하는듯하다...

영화라는 매체를 메시지의 전달 도구로서, 그는 그것에 희망을 실어보내는

실험을 하는 순수한 꿈을 지녔던 것은 아닐까 ..


처음 10~15분 내외의 단순한 구조의 짤막한 코믹물에서, 점점 자신이 각본,음악,감독까지

도맡으며 장편영화로의 길을 서서히 트여가고 있던 채플린은, 그 자유로운 권리로 영화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담아 내어가기 시작한다...


1921Kid에서는 코믹,춤,눈물,부성애,그리고 실제와 환상이 조화되는 환타지의 세계를

담고있다.꼬마 키드는 자신의 어린시절의 모습임과 동시에, 찰리의 애정은 실제 찰리가

자라면서 받아보지 못한, 부성애를 역으로 꼬마 키드에게 베풀고 있다.


The Kid (1928)에서.. Charlie 와 Jackie Koogan




23년에 만들어진 파리의 여인은 코믹이라기 보다, 로맨스 드라마에 가깝다.

채플린 자신은 출연하지 않고 있으며(영화 시작 초반에 자막으로, 자신이 출연 하지 않으니 양해바란다는

친절한 메시지가 나온다..단, 엑스트라로 잠시 출연한듯하다)
두 엇갈린 사랑을 하는 슬픈연인의 이야기를 담고,

비극적이면서도, 희망적인 결말을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의 두 연인은 어쩌면,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자신의 부모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리의 여인 (A Woman Of Paris,1923)
(여주인공 에드나 퍼비안스는 단편시절부터 찰리의 연인역을
도맡아 해왔던 여배우이기도하다.이 영화 이후 영화 출연은 뜸해지지만,
찰리의 살인광 시대와 라임라이트에 단역으로 우정출연하게된다.
라임라이트를 마지막으로 58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



25년 구두를 삶아서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황금광 시대(gold rush)에서는,

그의 코믹은 빛이 났고,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면 성공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성공과 사랑으로 결말이 난다..



배고픔에 자신의 구두를 삶아 동료와 나눠 먹는 장면.
웃기면서도 어딘지 처량하게 슬픈장면이다.
 (The Gold Rush,1925)


28년의 서커스는, 이전 단편영화 시절의 영화들과 비슷한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인의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임을 확신하고 좋아 날뛰는 모습이나,

사자 우리에서 기겁하는 모습등은 여전히 웃음을 자아내지만,

마지막, 여인을 다른 남자에게 넘기고 쓸쓸히 서커스 극단을 떠나보내며 홀로 남아있는

모습,그리고 이내 곧 힘차게 우스꽝스런 걸음으로 멀리 사라지는 모습은,

바보같은 순진한 떠돌이 그 자체이다....

(The Circus,1928)
극단과 여인을 떠나보내고 홀로 떠나는 "떠돌이" 
15년작, 단편 방랑자(The Tramp)의 업그레이드 판 같은 느낌이든다. 



꽃파는 눈먼 여인과의 로맨스와 함께,

술이 곤드레 만드레만 되면, 자살 하려고 하고, 자신과 같은 거지 떠돌이도 친구처럼 대해주다가

술이 깨고나면, 누군지 외면하고 다시 벽을 쌓는 어떤 부자가 등장하는 31년 시티 라이트에서는

그런 "가진자"를 가련한 친구로서 바라보는 찰리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결코, 어느 하나의 이념에 빠져사는 사람이 아닌것임이 이 영화를 통해서 입증되는것일지 모른다.


( City Lights,1931 )
눈을 고쳐줄 돈을 마련하고 감옥에 갔다온 떠돌이
기쁘면서도 아쉬운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본다. 



무성영화의 시대가 끝나가고, 더이상 "떠돌이" 캐릭터는 빛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 찰리는,

마지막 떠돌이 영화가 된,  불후의 명작  "모던 타임즈"를 만들게 된다.(36년)

경제 공황으로 모두가 거리에 나앉을때, 찰리는 모던타임즈를 통해서,

가난과 기계화,산업화 되어가는 사회, 비인간적이고 각박한 사회,

그리고 이념투쟁등을,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강하게 비판하고 풍자한다.

이제 순진무구한 떠돌이는, 많은 여행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제는 걱정과 우려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장면에서 보여지듯,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며 웃으며 걷자고

찰리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두 연인은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힘차게 걸어간다.

 


( Modern Times,1936 )
희망을 찾아 떠나는 찰리와 연인,
엔딩에 흐르는 음악은 "Smile"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바램과는 다르게 가고 있었다.

40년작 "위대한 독재자"는 38년도에 씌여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며 벌어진 2차대전이  39년이니까,

안타깝게도, 그의 우려는 영화 개봉과 동시에 현실이 되어버렸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찰리는 자신의 동갑네기 히틀러에게 처절한 조언을 한다...
(실제 채플린과 히틀러는 동갑이며 단지 4일 먼저 채플린이 태어났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이 마지막 연설 장면은,떠돌이 채플린이

떠돌이,바보,순진함. 이 모두의 이미지를 던져버리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는이제 바보같이 순진무구하지도 않을거고,

지금은 그보다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일종의 경고심 마저 들게한다.

히틀러뿐아니라, 모든이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전 인류적인 메시지....

어쩌면, 찰리는 히틀러의 모습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

영상을 통해, 관객을 휘어잡으며 희망과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자신과,

그와 반대로 군중을 휘어잡으며 오히려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파시스트 독재자...

그러기에 더욱 마지막 연설장면은 애절하게만 들린다.

 


(The Great Dictator,1940 )
연설을 마친 찰리는, 멍하니 카메라를 바라본다.


그렇게 처절한 절규는 메아리로 끝나고, 이제 그는 살인자가 되어 나타났다.

47년 살인광 시대(베르두씨)에서, 그는 생계를 위해, 여인을 꼬드겨 결혼하고

살인하는 살인자 베르두가 되어 나타난다...

1,2차 대전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자신에 대한 FBI의 압박 속에서 그는

점점 순수함을 잃은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가는것만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은 먹고살기위해 소수를 죽였지만,

지금도 많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살육당하는, 대량 학살을 꼬집는다.


궂이 이런 극단적인 배역으로,궤변에 가까운 억지 호소를 해가면서까지(생명은 다같이 소중하기에)

전쟁을 꼬집어야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당시 그의 심경이 어느정도 였는지를 짐작 할 수 있을것 같다.

이제 떠돌이는 과거의 순진함을 잃어가고, 냉소만 가득할뿐이다.

 


살인광 시대( Monsieur Verdoux,1947 )
떠돌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냉소적인 캐릭터 베르두로 나타난 찰리...



52년의 라임라이트는, 이제는 저항할 힘도 없는 떠돌이의 마지막

사투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이상을 설파 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일어날 줄 아는 노숙하고 점잖은

신사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젊은이들을 바라본다.

무대 한켠에서 죽어가는 모습과 상대적으로, 무대에서 한껏 연기를 펼치는

젊은 여인을 보여주며, 채플린은 슬슬 이제 무대 뒤쪽으로 내려가야할 시기임을 깨닫는듯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이제 젊은이들에게
넘겨준다...

마지막 장면은 떠돌이의 완전한 죽음이자, 그 자신의
과거에 대한 상념일것이다....

 


( Limelight,1952 )
한때는 유명한, 그러나 지금은 한물 간 코미디언이 되버린
칼베로(calvero)로 등장한 찰리... 자신의 마지막 기념쇼에서 관객을 멋지게 웃기고
무대 한켠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 공연장면에서, 그와 파트너를 이뤄 공연한 배우는
채플린과 함께 지금까지도 라이벌로 여겨지는, Buster Keaton이다.)



5년후 그는, 뉴욕의 왕 으로 돌아온다.

모던타임즈에서 떠돌이가 떠났다면, 라임라이트에서 찰리는 떠났다...

이제그는 상처받을만큼 여리지도 않고, 또 순진하지도 않다.

변화된 세상은 모든것이 어색하고, 부자유스럽다.

순수한 의도는 광고에 이용된다. 열변을 토하는 꼬맹이의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는 모습은,

영락없는 힘없는 노인의 모습이다. 뉴욕의 왕에서의 왕은, 사실 역설적인 표현일 것이다.

왕의 시대는 끝났고, 다변화 되어가는 세상속에서 이제 적응 해야 한다.

돈때문에 CF를 찍기로한 이 몰락한 왕은, 성형수술도 마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풍자는 여전하다.. 이상주의적 시각으로 설교나 계몽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맥카시즘을 비판하듯, 법정에 물을 뿌려 버린다....



( A King In New York,1957)
열변을 토하는 꼬맹이(실제 찰리의 아들 마이클 채플린)를
넋놓고 바라보는 채플린...





우스꽝 스런 복장의 떠돌이는, 자유롭게 놀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가난 하고 힘든 시기에
웃음을 주고, 희망을 주었다. 자기 처럼 바보도 웃으며 산다고 희망을 가지라고 이야기 하였다.

똑똑한 이들이 세상을 점점 바꿔 갈때, 떠돌이는 슬슬 자신의 웃음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것을 알게 되고, 소리도 질러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냉소적이게 변하기도 하였으나,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이제 콧수염을 떼고 모자를 벗고
지팡이와 함께 가방을 꾸리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다..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실감하며,

변화된 세상을 웃겨줄, 자신 보다 더 나은 떠돌이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모던 타임즈 엔딩곡 Smile )
92년 Chaplin ost버전..


 





1992년 "리차드 아텐보로"감독의 "Chaplin"중에서의 마지막 장면,72년 오스카 공로상을 받는 이 장면은
한물 간 코미디언이 갈채 속에 마지막 공연을 하는 모습의 "Limelight"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장면에서 특히, 채플린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추방당한지 수년만에야  다시 초대되어 박수와 갈채를
받는 채플린의 상념어린 표정을 마치, 실제 채플린이 다시 살아난 느낌이 들 정도로 명연을 펼쳐보인다.


 (Chaplin,1992)
마지막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