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지혜는 실용적인 지식들의 무분별한 집적을 통해서 얻어지는것이 아니라, 모든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것을 파악하는데 있다. " - 헤라클레이토스 -

!.. Book 끄적임

장미의 이름 (The Name of Rose)

rosehill 2018. 2. 4. 01:55


소설 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중반에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이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여기에 당시의 시대적 배경들이나 갈등 요소들이 어우러져 지적이고 철학적인 흥미를 더한다. 깨알 같은 글씨로 작지만 제법 두꺼운 양장 두 권의 책은 읽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오래전 굴러다니던 빛바랜 옛날 책들을 떠 올리게도 한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게다가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굉장히 복잡하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데, 우선 첫 번째 화자인 "필자"가 등장한다.. 이 필자는 독자들에게 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정리하면 멜크 수도원의 늙은 수도사 아드소가 14세기 말경에 쓴 수기를 이후 19세기에 마비용이라는 석학이 필사하고 그 해당 필사본을 필자 본인이 입수했다가 분실하게 되고..  필자는 이후에 다른 고 서점에서 전혀 다른 책에서 비슷한 내용을 발견한다는 식의 두서 없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실제로 하나의 어떤 책이 존재하는 식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이 필자가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이중 액자 구조로서 실상 모든 이야기는 필사본 책속의 화자인 아드소라는 (이 소설속에서 주인공 윌리엄의 제자로 등장하는 ) 늙은 수도사가 기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쨌건 이런 방식은 다소 혼란스럽기는 해도 뭔가 이 소설에 집중할 수 있게끔 우리를 안내한다.

소설은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라는 하나의 큰 사건이 중심이 되지만, 실상 이를 파헤치는 과정 속 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저자의 철학적, 종교적 관점들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들과 함께 논쟁의 형태로 펼쳐진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깨알같은 글씨 못지 않은 더 작은 깨알같은 번역자의 "주석"들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같이 "범인이 누구다"와 같은 식의 흐름만 놓고 보는것이 아닌,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기본 큰 흐름일 뿐이고 이 과정에서 앞서 이야기 한 대로 논쟁의 형태로서 이야기되는 여러 가지 종교적 딜레마라든가 선과 악에 대한 관점,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들에 대한 이야기들.. 이런것들이, 개혁주의 성향의 가톨릭 교파(소형제회,윌리엄이 속한 프란체스코회)와 보수적인 가톨릭 교파들간의 논쟁에서 교회의 청빈문제를...  또 때론, 윌리엄과 이단 심판관 베르나르 귀의 대립적 관점을 통해 이단과 마녀재판에 관해.. 늙은 수도사 호르헤와 윌리엄의 논쟁을 통해 절대적 진리라 믿고 있는것에 대한 지나친 맹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것들 하나하나가 주된 사건들과는 별도로 나름의 읽는 재미를 제공한다. 물론 이런것들을 꺼리는 독자들 입장에선 많이 아는 사람이 늘어놓는 철학적 견해록 처럼 보일 수 도 있겠다.



앞서 존재 하지 않는 책에 관해 이야기 했지만, 이 소설속에서 언급되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시학2권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 책은 아리스토 텔레스가 언급할 때, "나머지는 시학2권 희극론에서 다루겠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고는 해서 당연히 존재 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재 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 다만 책의 존재에 대해 수 많은 궁금증을 자아낼 뿐이다. 당연히 움베르토 에코 역시 마찬가지 였을 것 같다. 어쩌면 누군가가 이 책을 가지고 공개해선 안되기 때문에 꽉 움켜쥐고 내놓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뭐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아마도 여기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적 창안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없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게 희극을 다룬 책이다. 없는 것일까? 아님 누군가 그것을 공개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공개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14세기면 교부의 시대가 막을 내려가며 스콜라 철학의 시대가 도래하고 그것은 아리스토 텔레스의 저서들의 재발견을 통해서 이뤄졌다고 한다. 2~4세기 이단으로 밀려나던 아리스토 텔레스의 저서들이 13~4세기를 들어오며 역으로 이슬람 쪽으로 부터 다시 역 번역되어 들어오던 무렵.. 당시 가톨릭은 부패했고 권위가 흔들리고 있을때고, 대학이 융성하고  학생들이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 할 때다.

당시의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가톨릭의 입장에선 이들 똑똑이들이 곱게 보였을 리가 없다. 그것들 모두는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처럼 보였을 것이고, 극단적이게는 이들 모두가 이단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무렵에 바로 그 아리스토 텔레스의 시학2권 희극론이라는 책이 등장한다? 수도원이라는 하나의 폐쇄된 공간, 장서관이라는 지식의 보고 속에 감추어져있는 서책... 수도원에 군림하며 젊은 수도사들의 탐구욕을 가로막으며 서책을 움켜쥐고 있는 늙은 수도사... 여기에서 비롯되어지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건들... 이런것들을 염두하고 소설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호르헤"라는 늙은 수도사가 앞서 이야기한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호르헤는 젊은 수도사들이 악과 관련한 책을 공부하는 데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런 악을 파면서 상대적으로 그리스도라는 선을 부각 시키는 계기가 된다고 믿었기에 그런 것에 관해 관대하였지만, 아리스토 텔레스의 저서 희극, 즉 웃음이라는 것에 대해 철저하게 배척을 했다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선과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자신들의 추구하는 종교적 선명성을 희석시켜 버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식의 희화화는 오히려 악의 책 보다도 더 악 스러운 경멸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호르헤가 가진 어떤 절대적 진리에 대한 맹신이 오히려 그와 정 반대 선상에 있는 악을 하나의 동지적 관계로 만들어 버리는 모순도 우습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식의 메커니즘.. 지금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4세기에는 하나의 서적 (아리스토 텔레스라는 고대 철학자의 서적)이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 다른 시대 다른 배경 하 에서는 즉 뭔가 어떤 기술이나 과학적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것"의 등장 , (혹은 철학이 됐던 뭐가 됐던..) 이런것들이 원래의 흐름에 이질적 패턴을 만들어 내고, 이런 패턴에서 자란 새로운 세대들은 그것을 흥미롭게 파고들기 시작 할 것이고, 그것은 기존과는 다른 독자적인 패턴이나 문화를 만들어 낼 것이고, 당연히 이런 흐름들은 기존의 세대들에겐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질 것이며, 극단적인 경우 누군가에겐 이것은 하나의 이단으로 치부될 수 도 있을것이다. 그러니까, 어떤면에 있어서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의 상황은 어떤 시대 어떤 배경 하 에서도 똑같이 발생되는 문제 이기도 한 것 같다. 단지 그 요인이 하나의 서적이 될 수 있겠고, 어떤 시대엔 신문이 어떤 시대엔 라디오가, TV가 rock&roll이 인터넷이 또 sns가.. 될 수 있을것이다.

(여담이지만, 우리시대가 최근 몇 년 동안 겪었던 이해불가한 시절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며 시민들이 성장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고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들을 호르헤적 관점으로서 못마땅하게 바라봤던 이들이 있었고 바로 이들이 운전대를 움켜 쥐고 운전을 했을때 어떤일이 벌어졌는지를 우린 여실히 봤던것이다. )




소설속에서 오늘의 서책이 호르헤가 호르헤가 되게 만들었고, 윌리엄이 윌리엄이 되게 만들었다면 내일은 서책이 아닌 다른것이 등장 할 것이기에 그때도 윌리엄이 윌리엄으로 있을것인지 아니면 호르헤가 되어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것은 절대적 진리 보다는 하나의 방향과 흐름이 아닐까..




"나는 가상의 질서만 좇으며 죽자고 그것만 고집했다. 우주에 질서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나... 이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중략)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목적을 지닌 질서이지. 그러나 고기를 잡으면 그물을 버리고, 높은데 이르면 사다리를 버려야 한다. 쓸모 있기는 했지만 그 자체에는 의미가 없슴을 깨닫게 되니까 말이다.. .. (중략)... 유용한 진리라고 하는것은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다.."

(640p 윌리엄의 대사 중에서..)


장미의 이름 세트
움베르트 에코 저/이윤기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