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리뷰

움베르토 에코의 제0호 (Umberto Eco - Numero Zero)

rosehill 2018. 11. 3. 03:03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 나왔다. 해외에서는 벌써 나온지라 국내 출판을 기다리던 나는 일찍이 소식을 전달받고 예약구매를 통해 책을 쥐게 되었다. 생각보다 얇은 두께와 이전의 책들과 달리 약간은 부드러우면서도 쉽게 읽혀져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이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볼 수가 없게됐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부터는 에코의 소설 외의 작품들을 틈나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탐독해 봐야 할것같다.



소설은 92년 6월 주인공 콜론나의 지난 두 달간 벌어졌던 일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한다. 소설속이야기는 세가지 갈래로 나뉘어지는데. 하나는 가짜 뉴스를 만드는 팀에 관한 이야기이고 이들의 편집회의 과정에서 알게된 동료 "브라가도초("허풍쟁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라는 인물을 통한, 무솔리니의 생존설과 후면에 도사리고 있는 "스테이 비하인드(Stay Behind)라는 조직에 관한 이야기.." 다른 하나는 크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의미가 담겨져 있는 인물... 가짜 신문을 창간하게 한 배후의 인물 비메르카테 (실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 코니를 상징한것으로 여겨지는)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그렇게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그저 그렇고그런, 그저 독일어 번역을 잘 할 줄 알아서 그동안 간간히 먹고 살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주인공 "콜론나".  50대 중후반 정도로 여겨지는  이 콜론나 앞에 시메이라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한 신문의 주필로서 자신의 회고록을 콜론나에게 대필을 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말하자면, 한 신문 주필의 회고록을 대필하는 대필작가(유령작가)가 되어 달라는것이다. 그런데 출간되지 않을 신문을 출간하면서 이 과정에서 회고록을 책으로 남긴다.. ?

이상한 이야기지만, 콜론나는 곧 시메이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를 하게된다. 결국 요지는 주필의 상관이기도 하면서 실제 다양한 미디어 그룹들을 거느리고 있는 사주(社主)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에 의해서 창간을 하기는 하는데, 실제 외부로 출간 할 목적보다는 신문을 이용해 다분히 어떤 높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그들의 무리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주의 목적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창간되지 않은 예비판('제0호'로 표기되는) 몇 개를 만들어 자신들이 신문을 통해 대중들을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하나의 세를 암시하므로서 그들의 눈에 든 후에 창간을 무효로 돌리는 조건으로 그들 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려 한다는것.

결국 창간되지 않을 신문일 가능성이 크기에 시메이 주필은 자기 나름대로 그렇게 될 때를 대비해,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물론 대필작가인 주인공에게 쓰게하겠지만) 출판되지 못한 이 비운의(주필의 표현대로라면) "제0호"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하고, 이것을 책으로 출판해 이득을 보려 한다는 의도가 깔려있는것이다. 외압으로 저지당한 독립언론 코스프레를 하며 동정을 얻어 판매율을 올려 득을 취하든가 아니면 비메르카테에게 창간 취소를 종용한 세력들로부터 마찬가지로 책 출판을 취하하는 대신에 큰 보상을 받으려 하는 의도인셈.


그렇게 사주와(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주필 시메이 그리고 내막은 모르지만, 그저 그런 정도의 수준과 타협성을 갖고 닳고 닳은 여섯명의 기자들이 신문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며 주인공 콜론나는 주필 시메이의 유령작가로서 일종의 비화 비슷한 회고록을 쓸 목적으로 그들과 함께 하면서 벌어지는 두 달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은 이 과정에서 이들이 뉴스를 만들어 가는 과정 그 중에서도 소위말하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는것 그러나 그것이 전혀 티가 나지 않게 교묘한 수법으로 즉, 어떤 하나의 팩트만 나열하는것 만으로도 어떻게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것에 대한 기법등을 이야기하는데..


이를테면 꼼꼼한 한 수사판사를 길들이기 위한 논의에서..


"....조만간 그 수사판사가 우리 콤멘다토레 사업에 참견하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 꼬치꼬치 캐기 좋아하는 그 수사 판사에게 의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게 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우리 발행인이 좋아할 겁니다."
"아시다시피 오늘날에는 누군가에게 고발을 당하거나 기소를 받게 되었을때 그것에 응수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요. 그저 그 고발인이나 기소인의 정당성을 떨어뜨릴 만한 것을 찾아내면 됩니다..."
(중략..)

".. 뇌물을 받은 적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뭔가 수상쩍은 일을 한 가지쯤은 했을 거예요.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지만, 그가 매일 같이하는 일을 수상해 보이게 만드는겁니다.. 팔라티노 당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중략)
"..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의 양말색깔이 특이했습니다. 에메랄드빛 또는 완두콩 빛깔의 양말이었거든요. 게다가 테니스화를 신고 다녔어요.. (..중략..)
"에메랄드빛 양말이라니.."시메이는 환희에 차서 소리쳤다.
"그 남자는 멋을 많이 부리는 사람이에요. 아니면 예전에 영어로 플라워 차일드라고 불렀던 히피족의 일원일지도 모르죠. 그가 마리화나를 피운다고 상상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거에요. 하지만 우리가 직접 그렇게 말하면안돼요. 독자들이 스스로 그런 결론을 내야 합니다. 팔라티노, 그런 점들에 신경써서 어두운 분위기가 강한 초상을 만들어 보세요. 그러면 그 남자도 무엇이 무서운줄 알게 될겁니다. 우리는 뉴스가 없는 상태에서 뉴스를 만들어냈어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말입니다..."

( 189~190p )


이쯤되면 신문사라기 보다는 하나의 흥신소다.

또한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의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면 말이다.



여기에 브라가도초의 무솔리니의 생존설이 이야기되고, 나아가 스테이 비하인드라는 하나의 조직이 언급된다. 역시 에코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소재중의 하나인듯하다. 그렇게  이야기는 흥미를 더해간다. 결국 브라가도초의 살해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취소되고 마는 창간호... 두려움에 떠는 주인공 콜론나.. 

무솔리니의 생존설은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후반에 등장하는 스테이 비하인드라는 조직은 일찍이 2차대전 이후 뿐아니라, 60년대 자칼이라 불리우는 킬러를 이용해 드골 암살 작전을 실행하려 했던 OAS라는 조직과도 연관이 있기에 독자들의 흥미 및 다양한 상상한 가능하다. 또한 크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전체를 통틀어 중요한 인물이기도 한 사주인 비메르카테란 인물... 다분히 전직 총리였던 베를루스코니를 연상시키는데 그가 어떤 큰 엘리트 모임에 들어가기위해 일을 벌인다는 소설의 설정은. 여담이지만 노 석학이 흔히 논하던 비밀 결사.. 그 급에도 들어가지 못했던 인물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굉장히 세련된 디스가 아닐까.. ㅎㅎ


* 여기서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프리메이슨 조직 P2 (프로파간다 두에)) 를 말하고 실제 베를루스코니는 p2의 멤버이기도 하다.



마지막은 콜론나의 자조 섞인 독백으로 마무리가 된다.

(318p)
"... 적어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고요하게 불신하도록 만들어 준것은 분명하다. 삶은 견딜만하다. 자기가 가진것에 만족하면 된다. (..중략..) 이제 남들이 말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고자 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것이다." ...

...고요하게 불신하도록 ... 

여자친구인 마이아의 심플한 위로에 주인공 콜론나의 독백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사실 소설의 분량도 그렇게 크지 않고 어찌보면 한창 뭔가가 진행되어가는 데, 비메르카테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더 펼쳐질것같은데.. 그리고 그전 같으면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름의 명쾌한 반박이나 하물며 조롱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그냥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다. 후반의 역자의 글을 보면 소설의 구상은 이미 과거 "바우돌리노"를 출간 할 무렵에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야기 구조가 바로 얼마전의 "푸코의 진자"에서의 설정과 겹치는듯하여 보류하였다가, 이후에서야 출판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후의 다른 소설들 특히 바로 전작인 프라하의 묘지 이후에 나온 소설로 보기에도 어딘지 좀 서글픈 유연함 같은게 느껴진다.


그가 죽었다는것을 인식하고 읽어서일까?


30년대에 태어났던 움베르토 에코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같은 그의 소설에서도 얼핏 엿볼 수 있지만, 유년시절은 파시즘의 울타리안에서 청년기엔 저항의 흐름속에서 그런 극과 극의 격변기를 다 거쳤다. 이후엔 인터넷과 SNS시대까지도 겪었다. 그리고 다시 도돌이표 찍듯 '베를루스코니'의 시대... 미디어와 정보의 범람 속에서 그것들을 이용하질 못하고 오히려 통제당하고 길들여지는 대중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유년기로 돌아간듯 한 느낌이었을까..  콜론나의 마지막 독백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의 발언처럼 정말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아니면 기호학자인 에코가 반어적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쓴 것일까..?


역자는 소설 말미에 이렇게썼다.
"처음엔 노 대가 선생께서 같이 웃자고 넉살을 피우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선생이 타계하신뒤에 다시 읽을때는 진한 슬픔을 느꼈다. 췌장암으로 곧 사망하리라는 것을 아시고 출간한 책이라니. 웃음뒤에 감춰진 허허로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마치 작가의 한숨 소리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 라고




한편으론 그가 로아나 여왕과 그녀의 신비한 불꽃을 따라 하늘위로 뻗은 계단을 오르며 이쪽을 바라보고 찡긋 윙크를 날리고 있지는 않을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에코 선생님 편히 잠드십시오.. Requiescet in pace...


제0호
움베르토 에코 저/이세욱 역